아침부터 왠지 싸하게 으스스 한 날씨다.
수학능력시험날의 저주 탓인가?
비가 예보되어 있었는데, 해가 빼꼼히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다가 오후부터 비와 함께 바람이 들이친다.
또 가을이 그렇게 지는구나 싶다.
어제부터 유기농 당근 생착즙 주스와 유기농당근 판매를 개시했다.
올 해는 두 종의 서로 다른 당근 종자를 각각 기간을 달리하여 파종하였는데, 종자마다 맛과 향에 차이가 있다. 아니 다르다.
서로 다른 종자를 파종한 이유는 혹시 모를 이상 이변에 따른 흉작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당근이 가진 각각의 맛과 향을 활용하여 보다 풍미가 깊은 생착즙 당근 주스를 만들어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아직은 더 자라야 하는 시기라 충분히 자란 크기의 당근과 조금 개성 있게 생긴 모양의 당근들을 솎아 모았더니 세 컨테이너 정도나 된다.
이렇게 밭에서 수확한 당근들을 창고로 옮겨 세척 후 다시 매장으로 이동, 한두 시간 동안 생착즙 당근주스를 만들기 위한 손질 작업을 해야 한다.
유기농 당근이 겨울의 추위를 맞이하지 않아 아직 당도와 깊은 맛은 덜하지만, 신선하고 풍부한 섬유질의 크리미함이 독특하다.
이제 판매를 시작해도 된다는 뜻이다.
아울러 유기농 햇당근도 소량주문에 한정하여 임시 판매를 재개하였다.
겨우내 당근이 충분히 자라고 본연의 깊은 맛과 향이 베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근 수확용 장비로 대량 수확을 할 수 없고, 비창이라는 손도 구을 사용 하여 일일이 한 개 한 개 단단한 땅을 쑤셔내 파내어야만 하기에 수확량에 한계가 있다.
작은 농부들이 판매하는 당근은 유통에서 정하는 상품과 비상품의 구분이 없다.
벌레나 동물이 파먹었거나, 부러지거나 상하거나, 심하게 변형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
크거나 작거나 모양이 길쭉하거나 둥글하거나 모두가 건강한 자연에서 동등하게 키워졌기 때문이다.
판매창구인 스마트스토어 "작은 농부들"에도 이와 같이 적어놓았다.
예쁘고 균일한 모양의 공산품 당근을 원하시면 구매를 망설이셔야 합니다.
사실 당근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 크게 쓸모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크기와 모양이 균일하다고 맛이 더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김밥용으로 채를 내어 쓰거나 주스용은 사이즈가 큰 당근이 요긴하다.
그 외에는 대부분 송당송당 썰어서 식재료들 간 색감과 풍미를 더하는 것이 당근의 역할이 아니던가.
그러한 당근의 역할을 특, 상, 비상품(파치)로 구분 짓는 그 어떠한 이유에도 나는 공감이나 동의할 생각이 1도 없다.
실제로 농촌에서는 비상품근절이라는 캠페인이 있다.
그 취지는 상품의 기준에 들 수 없는 비상품 당근들의 판매를 근절하여, 선별작업에 매우 성실한 농가와 그 수익원을 보존해 주자는 것이다.
유기농 당근의 경우 상품이 될 법하지 못한 것들은 아예 밭에 내버려 둔 채, 수확이 끝나자 마다 바로 경운을 하여 원천적으로 유통을 막는다.
게다가 땅에 유기물을 돌려주니 일석이조의 효과란다.
겉으로는 그럴싸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내 눈에는 농가들에 대한 유통상들의 가스라이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논리에서 요리에 사용하는 당근이 반드시 일정한 크기나 모양을 갖추어야만 하는 정확한 이유를 전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유통과 판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관습에 기인한다고 본다.
유통상의 입장에서는 균일한 크기와 모양이어야 포장에도 손이 덜 가고, 매대에 진열하기도 다루기가 편하다.
그뿐이다.
그리고 상품과 비상품의 구분은 농가에 많은 부담을 준다.
수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선별 과정에 또 다른 인건비와 포장작업에 비용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내가 타 농부의 당근 선별작업을 도운 적이 있는데, 대 여섯 가지로 선별하는 것도 봤다.
왕당근, 특당근, 상당근, 중당근, 미니당근(생식용) 아 그리고 주스용 파치당근까지.
그 작업은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 아무리 훌륭한 AI가 있다 해도 이를 받쳐 줄 섬세한 하드웨어 기술이 개발되기까지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사람의 손에 의존해야 가능한 작업이며, 나는 거의 보름 가까이 동안 100여 톤의 당근 선별에 시간을 써야 했다. 비록 일당을 받기는 했지만, 농사를 대함에 있어, 나에게는 참으로 무가치하며 의미 없는 노동이었다.
결국 당근은 그저 당근 일뿐이다.
당근을 먹는 식재료로써 소비자의 손에 전달되면 그로써 충분하다는 것의 나의 생각이며, 내가 당근을 유통상의 입맛에 맞게 선별하지 않는 합당한 이유이다.
그리고 나의 모든 당근들은 동일한 가치를 부여받는다. 개성이 다를 뿐 값어치가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에는 특별한 가격을 지불하면서, 더 혹독한 노동과 동일하거나 더한 비용을 투입한 농산물에는 그만큼의 가치 부여에 인색한 것일까.
꽃이 화려한 것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당근은 꽃이 아닌데 꽃에 준하는 미적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려 하는가 말이다.
당근을 키우는 데에 있어 결코 노동이나 비용이 덜 드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세상이 너무나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작은 농부들의 당근을 대하는 태도는 이 같은 틀에 박힌 관념에 대한 저항이자 신념이다.
제발 당근을 그냥 당근으로 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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