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춘분, 24절기 중 밤보다 낮이 길어지는 때라고 사전에 쓰여있다.
그렇게 어김없이 봄은 또 오기는 오는가 보다.
이른 봄 이미 제주 농부들은 장마 전 수확을 위한 감자, 단호박 등 봄 작물 파종을 마쳤고, 곧 가을작물 파종준비로 분주해질 것이다.
조만간 매일 동틀무렵 요란한 굉음의 트랙터 군단들이 밭갈이를 위해 도로를 점거할 터이지.
어감상 봄이란 따뜻함, 희망, 고난의 끝 뭐 대략 긍정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잔인한 계절이 되기도 한다.
특히 어느 농부에게는 말이다.
지인 중 누군가는 십년 가까이 안간힘을 쓰며 끌고 왔던 상당 부분의 유기농 농사 면적을 올해부터 축소하거나 포기하기로 했다.
게다가 고정수입확보를 위해 관행농사를 일부 병행할 생각도 있는 듯 하다.
사실 그의 농사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나로서도 그가 대체 어떤 목적에서 그 지독스런 농삿일을 고집해왔는지 이해가 어렵기도 하였다.
딱히 그의 농사가 대단한 돈벌이가 되어왔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에게서 자연순환농업이나 식량주권사수라든가 하는 대단한 농사철학과 신념 등 이렇다할만한 대의명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저 제주에서 "유기농하면 아무개"라는 실리없는 타이틀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같기도 했다.
어쩌면 어떠한 사연으로든 대부분의 삶을 홀로 보내온 제주에서의 고독한 삶을 잊고자 농사에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한 동안 전업으로 글을 쓰기도 했던 사람이라 농사에 투신한 삶을 글로 풀어내 책을 내기도 하였고, 그에게는 그 글이 세상사람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매개가 되었왔다.
하긴 유기농 농부의 삶과 타고난 글재주는 여타의 농촌의 삶 중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는 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본인이 생산하는 농산물의 적극적인 소비를 독려하며, 유기농 농사에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고, 다양한 농산물 꾸러미를 구성하여 판매를 시도하기도 하는 등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 그 나름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려 부단히 애를 쓰기도 하였다.
그렇게 보내 온 시간이 십년이지만 결과적으로 손익계산서는 적자로 남아왔을 것이다.
그는 내게 무엇이라도 증명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그가 경작하는 모든 밭들에 함께 농사를 지으며 발을 들인 최초의 1인이자 최후의 1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해마다 명분도 없는 농사에 매달리느라 본인은 만져보지도 못할 금액의 돈을 빌리고 다시금 갚아야 하는 그 일련의 피곤한 순간과 시간들을 잘 안다.
나라를 구할 것도 아니요.
큰 돈을 벌고자 함도 아닌데 매일 열 두시간 이상을 쉼없이 걷고 나르고.
작황이 좋거나 나쁘거나 고민과 상심의 크기만 더해가는 그 삶을 지켜봐왔기에 그의 결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본다.
지난 해 씨만 뿌려놓고 알아서 자라준 자연재배 배추와 무우, 걔 중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밭에 남아 거대하게 자라다 꽃을 피운 배추를 잘라 멀칭용으로 쓰려다 한참을 꿀벌멍에 빠졌다.
해마다 생산되는 막대한 양의 농산물 중 소비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양이 얼마나 될까? 정확한 수치의 산출은 어렵겠지만 어느 매체에서 발표한 연간 전 세계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이
10억톤이라하니 그 양이 어느 정도 추산이 가능하다.
먹지도 않을 것을 생산하느라 땅을 갈아 엎어대니 꿀벌과 같은 존재가 갈 곳을 잃을 수 밖에.
꿀벌아 배추는 당분간 그대로 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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